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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직무, 이름만 들어도 어려웠던 그 시절
3년 전, 막 졸업을 앞두고 반도체 회사를 목표로 취업 준비를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전공은 반도체였지만, 설계, 공정, 테스트, 품질, 장비, 패키징… 부서 이름은 많았고, 직무 설명은 전부 기술적인 단어로 도배돼 있었죠.
그래서 처음에는 “공정은 현장이고 설계는 연구소지?” 같은 막연한 구분만 할 수 있었고, 내가 어디에 맞는지도 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입사 후 다양한 직무를 직접 접하고, 다른 부서 동료들과 협업을 하면서 그때 몰랐던 많은 것들을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3년 전 취준생의 시선과 지금 실무를 겪고 있는 입장의 시선을 함께 담아, 반도체 직무별 특징과 현실적인 조언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공정 직무 – 현장이 ‘기술의 최전선’
취준 당시에는 “공정은 공장에서 일하는 힘든 직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공정 직무는 가장 기술적인 이슈가 매일 발생하는 곳이고, 현장 최전선에서 반도체 성능과 수율을 실시간으로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 에칭, 증착, 산화 등 각 공정별 담당이 나뉨
- 불량률 데이터 분석, 조건 변경 요청, 신뢰성 시험까지 폭넓게 수행
- 장비 이상 감지 → 공정 정지 → 문제 원인 파악 → 조건 수정
실제로 해보니, 이론보다는 데이터 분석 능력과 빠른 상황 판단력이 더 중요했고, 기술 이슈를 공정 조건으로 해석해내는 역량이 공정 직무의 핵심이었습니다.
설계 직무 – 논리와 시스템이 만나는 공간
설계 직무는 이름만 들었을 때는 “되게 고급스럽고, 수학 잘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RTL 설계, 타이밍 검증, 시뮬레이션 같은 용어들이 낯설었고, 막연히 어렵다는 인상만 있었죠.
하지만 실무에서 만나본 설계 엔지니어들은 시스템 구조를 이해하고, 소프트웨어처럼 코드를 다루는 사람들이었습니다.
- Verilog/VHDL을 이용한 RTL 설계
- 타이밍 클로징, 전력 최적화 등 PPA 관점에서의 최적화
- 아키텍처 수준의 설계부터 IP 모듈화까지 다양한 깊이
실제로는 수학보다는 논리적 사고력, 디버깅 역량, 팀 협업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고, 개발보다 개념 설계에 강한 사람에게 잘 맞는 직무라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테스트 직무 – 반도체의 마지막 보루
취업 준비할 때 테스트 직무는 “품질 검사 부서 아닌가?”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입사 후 실제로 함께 일해보니, 테스트는 완성된 반도체 칩이 실제로 잘 작동하는지를 전기적으로 증명하는 핵심 단계였고, 테스트 결과가 출하 여부, 고객 클레임, 제품 신뢰성을 결정짓는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 테스트 벡터 설계, 시뮬레이션, 테스터 장비 운영
- 불량 패턴 분석 및 원인 추적
- 테스트 시간 단축, 수율 개선 등 ‘생산성과 직결된 직무’
기계적 반복보다도 회로의 동작을 이해하고, 이를 실제 장비에서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예상보다 기술적 난이도와 책임감이 높은 직무였다는 게 가장 큰 인상이었죠.
품질 직무 – 예상보다 훨씬 전략적인 부서
품질 직무는 “이상 있으면 대응하는 부서” 정도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개발-생산-출하 전체 사이클을 아우르는 조율자였습니다.
- 고객사 대응, 품질 클레임 분석, Root Cause 파악
- 고객 QA 대응, Yield 분석 보고, 신뢰성 시험 관리
- 제품별 불량률 관리 및 개선 Task 주도
이 직무는 기술 이해는 물론, 보고서 작성 능력, 커뮤니케이션, 상황 대응력이 모두 요구됩니다. 특히 대외 대응력이 중요한 부서라서, 기술적 커뮤니케이션이 뛰어난 인재들이 주로 이 직무에 투입됩니다.
장비 직무 – 반도체 생산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장비 직무는 공정과 자주 혼동되지만, 실제로는 설비 자체의 유지보수, 개조, 이상 대응을 전문으로 담당합니다.
- 장비 상태 모니터링, 예방정비, 이상 트렌드 분석
- Vendor 대응, 장비 성능 개선 Task 진행
- 장비 변경 시 Recipe 재작성 및 공정 조건 협의
장비 직무는 기계적 이해 + 전기적 회로 + 자동제어까지 전방위적 지식이 필요한 반면, 취업 준비 과정에서는 이 직무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실무를 해보니, 공정보다 더 ‘장비스러운’ 일을 하는 진짜 테크니션이 바로 이 부서였습니다.
취준생 입장에서 아쉬웠던 점 –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3년 전 취업을 준비할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직무별 현실적인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업 공식 채널은 너무 추상적이었고, 커뮤니티에 있는 정보는 단편적이거나 오래된 내용이 많았습니다.
- “이 직무는 어떤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지?”
- “진짜로 하루에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거야?”
- “이 직무 출신은 커리어를 어떻게 쌓아가?”
이런 정보들이 부족해서, 막연히 ‘대기업’, ‘안정성’, ‘연봉’만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고, 입사 후 실무를 겪으며 재적응이 필요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취업 전에 직무 리서치가 훨씬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걸, 실무에 와서야 알게 됐습니다.
‘직무 이해도’는 취업의 가장 큰 무기였다
반도체 기업에 들어오고 나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직무를 잘 알고 들어온 사람과 아닌 사람은 출발부터 다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적성에 맞는 직무를 골랐을 때는 빠르게 성장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직까지 고민하게 됩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스펙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싶은가’를 아는 것입니다. 반도체 산업은 수많은 직무가 연결된 거대한 조직이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정확히 찾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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