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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압이 다르면 회로도 말이 안 통한다 – 그때 필요한 것이 Level Shifter
오늘날 전자제품 내부에는 수많은 종류의 IC가 함께 동작합니다. 마이크로컨트롤러, 센서, 디스플레이, 통신 모듈, 메모리 등 각기 다른 목적과 기능을 가진 부품들이 협력하여 시스템을 구성합니다. 그런데 이 부품들이 사용하는 전압은 제각각 다릅니다. 어떤 부품은 5V를 기준으로 동작하고, 또 어떤 부품은 3.3V나 1.8V를 사용하기도 하며, 심지어 0.8V 로직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전압 레벨이 서로 다른 회로들을 직접 연결하면, 신호가 인식되지 않거나 회로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마치 다른 언어를 쓰는 회로들이 서로 소통하려는 상황과 같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품이 바로 Level Shifter(레벨 시프터)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Level Shifter의 기본 개념부터, 왜 필요한지, 어떻게 동작하는지, 실무에서 자주 등장하는 회로 예시와 주의사항까지 상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Level Shifter의 기본 원리 – 전압 레벨을 변환하는 다리 역할
Level Shifter는 신호의 전압 레벨을 한쪽 회로에서 다른 쪽 회로에 맞춰주는 부품입니다. 예를 들어 1.8V 신호를 3.3V 시스템이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변환하거나, 그 반대로 고전압 신호를 저전압 시스템에 안전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기능은 단순히 회로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디지털 신호의 논리 레벨이 제대로 전달되기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마이크로컨트롤러가 3.3V 환경에서 동작하고, 연결된 센서가 1.8V 출력만 제공하는 경우, 마이크로컨트롤러는 그 신호를 ‘LOW’로 인식해 오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때 Level Shifter가 중간에서 신호를 증폭 또는 감소시켜 적절한 수준으로 전달해 줌으로써 정상 동작이 가능해집니다.
Level Shifter는 단방향 또는 양방향으로 동작할 수 있으며, 사용하는 로직 종류(TTL, CMOS)에 따라 설계 방식이 다릅니다.
어떤 방식으로 동작할까? – 대표적인 Level Shifter 회로 구조
Level Shifter는 회로적으로 다양하게 구현될 수 있지만, 크게 아래와 같은 방식들이 주로 사용됩니다:
- 저항 + 트랜지스터 방식
가장 기본적인 회로입니다. NMOS 트랜지스터와 풀업 저항을 조합해, 양쪽 전압에 따라 동작을 조절합니다. 특히 I2C와 같이 양방향 통신이 필요한 버스에서 자주 사용됩니다. - Buffer 기반 IC
고속 회로나 정밀 신호 전송이 필요한 경우, 전용 Level Shifter IC가 사용됩니다. 이들은 내부적으로 슈미트 트리거나 CMOS 게이트를 이용해 논리 레벨을 정확하게 복원하며, 속도도 빠릅니다. - 전압 검출 + 드라이버 방식
입력 전압을 비교한 후, 기준 전압에 따라 출력단 드라이버를 조절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ESD 보호 회로나 고정밀 통신 라인에서 자주 사용됩니다.
실제 제품에서는 여러 개의 라인을 동시에 변환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4채널, 8채널, 16채널 등 멀티라인 전용 Level Shifter IC가 흔히 사용됩니다.
실무에서의 사용 예시 – 없으면 회로가 아예 안 돌아간다
Level Shifter는 다양한 회로에서 사용됩니다. 그중에서도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합니다:
- 저전력 센서 ↔ 고전압 MCU
최신 센서는 전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1.8V나 2.5V 로직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MCU는 여전히 3.3V 또는 5V 레벨을 사용하기 때문에, 양방향 통신을 위해 Level Shifter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 FPGA ↔ 외부 메모리/모듈
FPGA는 IO 전압을 유동적으로 설정할 수 있지만, 외부 모듈의 요구 전압과 다를 경우, Level Shifter를 통해 전압 호환을 맞춰야 합니다. 특히 고속 통신에서는 타이밍과 노이즈 특성을 고려한 고성능 Level Shifter가 필요합니다. - I2C, UART, SPI 등 통신 라인
다양한 전압 환경이 섞인 보드에서, 하나의 버스 라인을 여러 장치가 공유할 경우, 레벨 시프터 없이는 통신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 디버깅용 JTAG, 프로그래머 연결 시
개발자들이 흔히 간과하는 부분이지만, 외부 디버깅 툴의 전압과 타겟 보드의 전압이 다르면, 프로그램 전송이 실패하거나 보드 손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때도 Level Shifter가 안전하게 전압을 맞춰줍니다.
설계 시 주의할 점 – 단순 연결보다 더 민감한 부품
Level Shifter를 회로에 단순히 연결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포인트는 실무에서 반드시 주의해야 합니다:
- 속도(Speed Class)
어떤 Level Shifter는 수백 kHz 정도만 지원하며, 고속 SPI 라인에서는 타이밍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동작 주파수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 전압 범위 확인
일부 IC는 특정 전압 조합에서만 정상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1.8V ↔ 5V는 되지만, 1.2V ↔ 3.3V는 안 되는 제품도 있습니다. - 입출력 방향 설정
단방향 IC를 양방향으로 잘못 배치하면 신호가 막히거나, 심할 경우 회로가 손상됩니다. - 풀업 저항 중복
I2C 같은 회로에서 Level Shifter와 외부 회로 양쪽에 풀업이 동시에 존재하면 신호 충돌이나 드라이브 실패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정전기(ESD) 보호 여부
일부 Level Shifter는 내장 ESD 보호가 없기 때문에, 외부 회로로 노출될 경우 추가 보호 소자를 붙여야 합니다.
실전 사례 – 작은 부품 하나가 회로를 멈추게 한다
실제로 한 의료기기 개발 프로젝트에서는, 센서 모듈이 1.8V 신호를 출력하고, 메인 MCU는 3.3V 레벨로 동작하고 있었습니다. 초기에 설계자가 레벨 시프터 없이 회로를 연결했고, 테스트 과정에서 센서 데이터가 간헐적으로 튀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결국 원인은 MCU가 1.8V 신호를 LOW로 잘못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다른 사례는, 해외 고객용 제품에서 UART 통신이 안 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조사 결과, 고객 장비는 5V 로직을 사용하고 있었고, 당사 제품은 3.3V 레벨만 허용하는 구조였습니다. 문제는 UART 라인이 직접 연결되어 있었고, 이로 인해 MCU 핀이 손상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Level Shifter를 추가한 후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처럼 회로에서 '작은 문제 같지만, 실제로는 전체 시스템을 멈추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바로 Level Shifter입니다.
회로와 회로를 이어주는 조용한 조율자
Level Shifter는 그 자체로 복잡한 기능을 하지는 않지만, 시스템 전체의 신호 흐름을 안전하게 이어주는 중재자이자 다리 역할을 합니다. 특히 다양한 전압 환경이 혼재된 현대의 회로 설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핵심 부품이며, 이를 어떻게 설계에 적용하느냐에 따라 제품의 신뢰성, 안정성, 디버깅 용이성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단순한 연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디지털 회로의 ‘말이 안 통하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부품, 바로 Level Shifter입니다. 이 부품을 정확히 이해하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 그것이 진짜 전자 설계자의 기본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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